Zeredi / 저널
되어감의 아키텍처
동서양의 가치관이 어우러진 성장 과정은 훗날 AI, 프라이버시, 그리고 멀티버스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고민은 Zeredi의 핵심 질문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정체성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요?
저는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이 공존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자랐습니다. 삶의 목적과 자아 성찰에 대한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제 사고방식의 일부였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그보다 나중에 접하게 되었죠. 이것들은 어떤 제품을 만들기 위한 컨셉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저 개인의 경험일 뿐, 동남아시아에서 자란 모든 이들의 모습은 아닙니다. 동양이나 서양의 가치관 모두 어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게 남은 것은 서로 다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술에 대한 질문이 이러한 성찰에 새로운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AI와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것이 Zeredi 디자인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정체성이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이 질문이 더해진 것이죠. 이 질문은 지금도 Zeredi가 프라이버시에 접근하는 방식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어린 시절의 영향과는 별개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AI에 대한 고민과 맞물려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살았을 수도 있는 삶,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우리의 서로 다른 모습, 그리고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 말이죠.
이 모든 생각의 실타래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습니다. 'AI 중심의 세상에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삶조차 끊임없이 변하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제품을 만든 뒤에 이야기를 꾸며내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프라이버시와 정체성, 그리고 '되어감(becoming)'에 대한 고민이 먼저 있었고, 그 뿌리 위에서 모델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먼저 던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디자인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프로필 하나로 우리의 모든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사람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설계하기 전, 우리는 '설명'이라는 것이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형태를 만들기 전의 질문들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은 하나의 가설일 뿐, 저희가 예측하는 확정된 미래가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이 개념은 자아의 연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만약 특이점이 현실이 된다면,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여전히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특이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의 정체성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답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여전히 '나'로 만들며, 내가 나를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 무엇이 변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철학적인 질문이지, 특정 기술에 대한 예측이나 시스템이 사람을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멀티버스는 또 다른 상상의 창을 열어주었습니다. 저희는 다른 버전의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으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가능성을 상상력의 통로로 삼은 것이죠. 선택받지 못한 삶의 버전들은 어떨까요? 혹은 특정한 환경이 아니면 절대 드러나지 않는 한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요?
그런 다면성을 발견하기 위해 굳이 다른 우주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에서는 내성적이었다가, 다른 방에서는 외향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훨씬 전부터 마음속으로만 품어온 야망이 있을 수도 있죠. 현재의 모습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부분이 거짓인 것은 아닙니다.
flowchart TB
you["You"]
you --- professional["Professional you"]
you --- mom["Mom you"]
you --- daughter["Daughter you"]
you --- student["Grad student you"]
you --- dreams["Your dream you"]한 사람, 삶의 서로 다른 모습들. 이러한 역할들은 서로 겹칠 수 있으며, 이는 예시일 뿐 당신을 정의하는 체크리스트나 완전한 설명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들은 제가 훨씬 이전에 고민했던 '자아의 변화'로 저를 다시 이끌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변하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설명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어야 하며,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고 해서 이전의 모습이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생각들이 곧바로 완성된 아키텍처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디자인 과정에서 계속 품고 가야 할 가치 있는 질문들을 던져주었습니다.
지금의 나, 그리고 되어갈 나
어린 시절의 가치관과 나중에 발견한 생각들은 이 고민을 단순한 디지털 프로필의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로 만들었습니다. 목적이 있는 삶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묻게 합니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판단과 선택, 반응을 돌아보게 합니다. 자아의 변화는 우리에게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서로 대체 가능한 정답이 아니라, 각기 다른 관점의 영향력입니다.
'에고'에 대한 질문은 이 탐구를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게 바로 나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맞지 않는 정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동양적 혹은 서양적인 단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철학적 관점들은 이 질문을 살펴보기 위한 여러 방법일 뿐, 제가 이 모든 전통을 실천하며 자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교 사상에서 무상함(impermanence)과 무아(non-self)에 대한 가르침은 '나'라고 부르는 모든 것 뒤에 영원하고 독립적인 본질이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어떻게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지를 살피게 합니다.
그 곁에는 에고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유용한 설명이 어느덧 끊임없이 방어해야 하는 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조용한 사람이야." "나는 항상 유능해." "나는 마음을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설명은 처음엔 소속감을 주지만, 어느덧 조용히 의무감이 되어 우리를 옭아맵니다.
서양의 일부 실존주의 철학은 '되어감'에 대해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사람은 어떤 카테고리로 다 설명될 수 없으며, 삶은 우리가 완전히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삶이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는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점입니다. 변화한다고 해서 이전의 나와 연결된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전통들은 서로 대체될 수 없으며, 정체성에 대해 하나의 공통된 답을 주지도 않습니다. 또한 '에고'라는 단어가 영적, 철학적, 심리학적 맥락에서 모두 똑같이 쓰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관점들을 제 질문 곁에 나란히 두어 함께 고민하는 것이지, 이것들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각들을 함께 놓고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변한다면, 무엇이 나를 여전히 나로 만드는가?'
Zeredi에게 이는 더 겸손한 디자인 질문이 됩니다. 무엇이 사람을 동일한 인물로 만드는지 단정 짓지 않으면서, 어떻게 디지털 정체성이 연속성과 변화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스템이 자아의 본질을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희의 지향점은 더 실용적입니다. 사용자가 "지금의 나에게는 이것이 중요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되, 그것이 "이것이 나의 전부이며 영원한 모습이야"라고 강요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붕괴 (The Collapse)
프로필은 '측정값'을 담고, 사람은 '가능성'을 담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큐비트(qubit)는 0과 1이라는 상태의 중첩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측정하는 순간 하나의 결과로 결정됩니다. 이를 '붕괴(collapse)'라고 하며, 상태가 하나의 결과로 업데이트되는 것이죠.
사람은 큐비트가 아닙니다. 이는 과학적인 정체성 설명이 아니라 영감을 준 비유일 뿐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관찰을 통해 수많은 가능성이 하나로 결정된다'는 이미지는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간단한 만화처럼 상상해 보았습니다. 제가 0과 1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진 원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난 그냥 이렇게저렇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 누가 날 보고 있네. 가만히 멈춰서 마주 봐야겠다.'
물론 이는 재미를 위한 의인화일 뿐, 실제 측정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자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멈추기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측정에 반드시 의식 있는 관찰자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 농담 속에 담긴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을 위해 내 모습 중 단 하나의 버전만을 고정해 보여줘야 한다고 느끼는 감정 말이죠.
디지털 프로필이 바로 그런 '좁혀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 삶의 유동적이고 복잡한 순간 중 찰나를 포착해 그것을 고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설명이라는 것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유용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어느 한 순간의 진실이,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기대되는 정답이 될 때 시작됩니다.
단 하나의 관찰 결과가 전체 설명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될까요?
속삭임과 데이터
상대방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싶어서 일부러 조용한 식당을 선택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시스템은 예약 내역을 봅니다. 그리고 '조용한 장소를 선호함'이라는 데이터를 기록합니다. 선택은 포착했지만, 그 안의 '속삭임'은 놓친 것이죠. 데이터는 보지만, 그 저녁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내일은 음악 소리에 완전히 파묻히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이 두 모습 모두 진짜 당신입니다. 어느 쪽이 다른 쪽을 교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필은 마치 두 번째 선택이 실수인 것처럼 첫 번째 답을 계속 밀고 나갑니다. 선택은 패턴이 되고, 패턴은 라벨(label)이 됩니다. 결국, 당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 라벨이 먼저 당신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누락된 맥락을 시스템이 반드시 수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식당 선택이 나를 정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굳이 그 속삭임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때로는 시스템에 더 친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좁은 범위의 결론만 있으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프로필이 아닙니다.
정체성의 기하학
이것이 Zeredi의 심장과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희는 어떤 대답이 진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영구적일 필요는 없다고 믿습니다. 양식을 다 채운 후에도 삶은 계속 흐릅니다. 우리는 너무나 조용히 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떠난 뒤에도 우리의 '디지털 유령'들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 있곤 합니다.
정체성의 기하학적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조용한 저녁 식사와 시끌벅적한 밤을 설명하기 위해 두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맥락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특정 상황에서 드러낸 모습이 어디를 가든 당신을 따라다니는 설명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조용한 모습이 외향적인 모습보다 덜 진실한 것이 아니듯, 어느 하나가 사람 전체를 담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라벨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그것을 영구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곧 감옥이 됩니다.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설명인가, 어디에 속하는가, 그리고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
삶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당신만의 것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세세한 부분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차이점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요.
경계 너머의 여백
어시스턴트는 당신에 대한 깊은 이론을 세우지 않고도 일상적인 업무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유용하다는 것이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받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을 의미해서도 안 되고요.
Zeredi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비전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앱은 개발 중입니다. 이것들은 작업을 이끄는 질문들이지, 상상한 모든 경험이 이미 구현되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시작할 때 던졌던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문은 디자인 결정으로 이어졌고, 어떤 질문은 디자인이 계속해서 던져야 할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저희의 의도는 한 사람을 완전히 가둘 수 있는 프로필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 주변에 충분한 여백이 있는 설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맥락을 위한 여백.
또 다른 대답을 위한 여백.
프로필이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의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은 Zeredi 철학의 '표현(Expression)'과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것을 그 사람의 전부로 취급하지 않고, 그 표현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